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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기록장

고맙고 감사한 일

김익수 2010. 2. 11. 01:32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매너리즘(자기관리 잘 못하면 이런 거 찾아온다)에 허덕이며 만사 귀찮아 하고 있을 무렵, 글쓰기를 가르치는 내 개인홈피가 이 틈을 타 문을 닫아걸었다.
주인이 시원찮으니 제 딴에 알아서 외부 빗장을 걸어잠근 것이다.

내친 김에 학교 강의도 그만 두겠다 선언하고 한 해를 넘겼다.
그 사이 머리를 식힐 겸 강원도 일대와 바다를 두루 돌아봤다.
상념의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돌고돌아, 그렇게 긴 터널을 막 지나려고 할 무렵,
스스로 문을 닫아 건 내 글쓰기 홈피가 절로 문을 열었다.

누굴까, 빗장을 풀어 문을 연 사람이.
순간 머리에 떠오른 한 사람. 아내였다.
늘 조용히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긴 터널을 빠져나올 때까지 다소곳이 기다렸다 다시 몸 추스려 일을 하라고 그리 한 게지. 그렇게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새 싹을 틔우는 기분으로 다시 컴퓨터를 켜고 매일 단편소설도 쓰고 강의계획도 세우고 책도 보면서 그 지루하고 오랜 터널을 홀가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안부차 여기저기 전화를 하다가 오랜만에 커리어코치 윤영돈 소장과 통화를 하게 됐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세상에.. 만료된 내 홈페이지 도메인을 그가 사비를 들여 연장해 놓았다지 않은가.

"김 대표님, 비즈라이팅 도메인이 만료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연장해 두었어요."

주변에 지인들 많아도 고마운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헌데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나한텐 단지 도메인이 아니라 매너리즘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게 한 종지부 역할을 해준 것인데...

살고 보면 세상 참 우습다.
살아 보면 인생 별 거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삶은 어떤 형태로든 살 만한 것이다.
내가 나를 버릴 때에도,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는 누군가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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