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끄적이는
권력의 법칙1 본문
아이들 책을 사러 동네 서점에 갔다가 묵직한 책 한 권을 만났다. 로버트 그린이 펴낸 <권력의 법칙>. 헤비한 느낌에 권력의 속성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심리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에 이끌려 샀는데, 읽을수록 묘한 느낌을 받는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책이란 느낌이 든다. 어떤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권력을 움켜쥐는 48가지 전략은 말그대로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권력법칙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필터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런 속성을 충족하는 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
책에서 얘기하는 권력이란 말 그대로 세속적인 명예, 돈, 사회적 지위 따위이고, 역사적인 관점으로 볼 때 권력의 승자는 결국 '이긴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예, 돈, 사회적 지위를 '이긴자의 속성에 따라'(책에 써 있는 것처럼 때에 따라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서) 배우게 된다면 책을 아예 읽지 않은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큰 맥락에서, 또 역사적 관점에서 권력은 분명 세상살이의 속성 중 하나이고 비권력자들에게 있어 권력은 늘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다. 게다가 책은 처세술의 여러 기법들도 다루고 있어서 척박한 세상에 지친 비즈니스맨들에게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대로 권력의 속성을 '이긴자'의 관점에서 주로 다루기 때문에 필터링이 잘못 되면 합리적이고 덕이 있는 오피니언 리더를 기르는게 아니라 이기적인 권력문화만 양산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이다.
비교적 책의 내용은 논리적으로 기술되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다윈이 정리한 것처럼 인간의 유전화는 이기적인 것이고, 이에 비추어 보면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이기적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권력을 논하는 책의 내용은 이런 기조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이기적인 발로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결국 내가 누군가를 돕는다던가 도움을 받는 것도 다 누군가의 이득 때문인 것이지 호혜의 원칙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실제로 책은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생물이 이기적으로 진화해 왔음을 밝혀낸 진화론자들도 인간이 아무런 조건 없이 호혜를 배푸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기꾼들의 이야기까지 교훈으로 다뤄가며 권력의 전략을 논한 것은 아쉽지 않나 생각된다.
책을 다 읽지도 않은 놈이 왜 딴지를 거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이 권력자들에게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서민들의 심성까지 DRY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곱상한 우려에서 미처 다 읽기도 전에 펜을 들었다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후에 반전이 있다면 이야기가 뒤집어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