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끄적이는

메타포가 필요한 이탈리아 영화 Double Hour 본문

이런저런

메타포가 필요한 이탈리아 영화 Double Hour

김익수 2013. 4. 20. 16:29

 

 

미국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에서 유럽 영화는 나에게 여전히 생소하다. 음식을 편식하지 않아야 하듯, 영화도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데, 우리는 미국식 짭쪼름한 것들만 열심히 찾아다닌다. EBS 주말 영화 Double Hour는 그렇게 단지,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문화적 편식을 보충하기 위해 시청한 영화다. 메이드로 일하는 여주인공이 호텔에서 자살사건을 목격할 즈음부터 영화를 본 나는, 그 즈음이 영화의 초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퍼즐 맞추듯 영화를 봤다.

 

호텔에서 메이드로 일하는 여주인공 소냐는 우연히 호텔에서 한 투숙객의 투신 자살을 목격한 그날, 3분마다 파트너가 바뀌는 데이트 클럽에서 전직 경찰관 출신의 사설 경비원 귀도를 만난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귀도가 경비원으로 일하는 대저택으로 놀러가고, 귀도는 경보를 해제한 상태에서 녹음장치만 켜놓은 채 그녀와 뜰로 나간다. 그곳에서 수줍게 감정을 확인하고 키스를 하려는 순간, 복면의 무장강도들이 나타나 고가의 미술품을 강탈한다. 그 자리에서 귀도는 강도의 총에 맞아 즉사하고, 소냐도 총알이 이마에 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이후 영화는 환청과 환상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소냐의 모습을 내보내면서 여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조명한다.

한편에선 사건을 꾸준히 추적하는 귀도의 경찰관 친구가 그녀를 공범으로 의심하며 뒤따라 다니는 장면들을 내보낸다.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던 직장 상사와 장례식장을 다녀오던 날, 그녀는 상사가 건넨 마취성분의 커피 탄 술을 한모금 마시고 그에게 매장 당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곧 병실에서 깨어난 그녀의 꿈이 되고 만다. 꿈을 꾸고 깨어난 그녀를 사실은 귀도가 간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던 중 소냐는 미술품을 강탈했던 강도들의 차량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를 뒤따라간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계속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강도의 차량에 올라탄 소냐는 남자와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도주하는 계획을 세운다. 귀도는 그녀를 의심하고, 경찰관 친구로부터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 집을 털어 도망쳐 아버지로부터도 외면 당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만 목걸이를 사 그녀에게 걸어주며 그녀를 여전히 신뢰하려 든다. 하지만 결국 소냐는 귀도를 뒤로 하고 강도 애인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고 만다.

 

영화의 Fact만 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구도는 반전을 거듭하고, 여기에 소냐의 어지러운 심리상태를 보여주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를 상황들을 그려낸다. 상황들은 시간 축으로 또는 관계적으로 일정하게 연결돼 있지 않아, 관객들이 자신들의 메타포를 잘 관찰하지 않으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맥락을 놓치기가 쉽다고 판단된다.

이 영화가 내게 준 메시지는, 한 마디로, '사람이 바뀌나?'하는 것이다. 영화는 여주인공 소냐의 지난 과거를 바탕에 깔고 그녀의 어지러운 심리상태와 범죄행각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소냐라는 인간이 과연 변할 수 있는가를 관객이 자문할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둔다. 가령 그녀의 범죄 가담을 의심하며 귀도의 친구 경찰관이 그녀에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나, 자신의 집을 털어 가출한 딸에게 실망한 그녀 아버지의 반응을 빌어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냈다는 식으로 그녀를 단죄하는 방식, 그녀가 사실은 살아있는 애인 귀도를 뒤로 하고 공범인 '진짜 애인'과 도주하려고 할 때 귀도에게 던진 자문자답 말투 "나도 그런 사람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끊임없이 주인공 소냐를 통해 '인간의 태도가 과연 변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에서, 소냐는 딱 한 번, 아버지에게 전화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몸은 괜찮냐는 확인만 한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아버지는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고, 그녀도 그녀의 내면에 깔린 범죄자의 태도를 끝내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도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 소냐가 계속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도 애인과 뜨겁게 포옹하며 도주하는 상황을 목격한 귀도, 그 귀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 소냐, 하지만 그녀는 결국 변하지 않았고, 이런 암시는 그녀과 꿈 속 환상에 시달릴 때 이미 다 보았던 것들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그런 환상의 예지를 통해, 내면 깊숙이 박힌 인간의 태도와 심리가 행동의 변화로 변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기대하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영화의 제목 The Double Hour는 시와 분이 일치하는 타임, 예컨대 23시 23분 같은 시간을 일컫는다. 영화에서 소냐는 공교롭게도 이 더블 아워 타임에 죽은 귀도를 본다거나 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의미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다른 두 세계가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 같은 것으로 와닿는다. 게다가 그것은 찰나일 뿐이고 사실은 이미 예정된, 또 다른 시간 축에서 현실은 반복될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래서 과거의 속성 속에서 이미 시동 걸어진 어떤 회전 축은, 시간 축에서 우연히 마주친 다른 회전 축과 마주하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가게 될 뿐 양립하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