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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 받는 물고기 보셨어요?

김익수 2009. 9. 4. 01:59

이놈 이름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워낙 물고기 이름을 잘 몰라서 말이죠. 이해해 주세요.
아무튼 어느 횟집에서 만난 이놈은 용케도 칼질을 당하지 않고 횟집 어항에서 무려 2년 여를 살았다고 합니다.

드넓은 바다에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간에게 붙잡혀 아주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물고기의 심정을 제가 헤아릴 수는 없지만, 틀리지 않는 것 하나는 이 녀석이 어쨌든 주어진 환경에 새롭게 적응했을 거란 사실입니다.

인간도 그렇지만 모든 생물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피할 수 없어서 자연적으로 환경적응적 진화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녀석처럼 갑자기 환경이 바뀌게 되면 기존의 뇌회로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롭게 학습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바로 이 타이밍에서 새로운 진화가 이루어지느냐, 퇴보의 진화가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 결정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 녀석은 어느날 느낫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됐고, 2년 여를 잘 적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녀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지금부터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이 녀석은 주인을 알아본다고 합니다. 원숭이도 아니고 물고기가 주인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냥 주인의 말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물고기 밥을 줄 때면 이 녀석은 언제부턴가 어김없이 물밖으로 고개를 내민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 녀석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주인으로부터의 '먹이 받아먹기'를 학습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물고기가 불과 2년 여 만에 이런 학습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암튼 이 사건은 이 녀석이 뭔가 새로운 인지를 했다는 징표가 되겠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녀석이 '물줄기 안마'를 받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산소 공급을 위해 계속해서 물줄기를 쏟아붓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녀석은 희한하게도 물줄기를 잘 받아먹을 수 있도록 몸을 뒤집어서 한참동안 정지상태로 있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아래 사진이 제가 목격한 바로 그 장면인데요. 제가 보기에 녀석은 아가미를 한껏 벌리고 저렇게 정지된 상태를 한참동안이나 유지했습니다. 자기 몸을 뒤집은 상태로 말이죠.


주인의 말에 따르면 이 녀석은 현재 병이 들어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병이 들었다는 것은 주인이 이 녀석을 의료진에게 진찰받은 결과는 아니지만 2년 여를 함께 생활하면서 이루어진 교감의 결과로 이 녀석의 상태를 아는 것이겠지요.

암튼 이 녀석은 제가 보기에도 병이 좀 든 것 같았습니다. 다른 물고기와 다르게 심하게 조바심을 느끼는 것처럼 부단히 물 속을 왔다갔다 하거나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는 듯한 행동을 회전을 하면서 한다거나, 몹시 빠른 몸짓으로 불규칙적으로 헤엄을 친다거나 하는 것에서 이것을 느낄 수 있었죠. 횟집 주인은 아마도 이 녀석이 노화가 진행돼서 인간으로 치면 치매가 왔거나 노화된 어떤 병을 갖고 있어서 그럴 거라는데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이 녀석이 '물줄기 안마'를 받을 때 녀석을 손으로 접촉해 쓰다듬었는데도 신기하게도 녀석이 전혀 피하거나 도망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이 녀석이 병이 든 결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순간적으로 병이 들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오랫동안 주인과 생긴 교감의 작용으로 더이상 인간의 손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녀석이 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횟집 주인은 녀석을 오랫동안 애완동물 다루듯 정을 주면서 길러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이 녀석은 "주인이 나를 횟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이 진화의 역사로 볼때 물고기에서 육지로 나아간 생물체로부터 진화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가 미물이라고 표현하는 물고기가 메타세포체의 영장인 인간과 교감을 하고, 스스로 환경에 적응해 생존을 이어간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잣대에서 미물이니 하등동물이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자만심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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