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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약장수 같은 MB정부 교육정책

김익수 2009. 7. 28. 15:57


흑백 텔레비전을 보던 시절, TV를 보는 낙은 낙, 그 이상이었다. 특히 바보상자 속에서 우스꽝스런 몸동작을 보여준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무한한 상상력과 독특한 재미를 선사해서 어린 동심을 한없이 유혹하곤 했다.

엇비슷한 시기, 가끔씩 마을 공터에 차력이나 서커스를 하는 장사꾼들이 와서 한나절을 즐겁게 해주곤 했는데 이른바 회충약 장사꾼들이었다. 약장사는 우스꽝스런 얼굴 화장과 광대 복장으로 일단 혼을 빼놓고, 돌덩이도 척척 깨부수는 차력으로 박수를 유도한 다음, 약간의 서커스로 공연을 절정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는 며칠 세수도 하지 않았을 아이 하나를 불러내 허리춤에 덜렁 매달고는 엉덩이를 훌쩍 까뒤집어 그 길고 징글맞은 회충을 엉덩이에서 꺼내 보여주곤 했다. 신기하게도 회충은 마치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어 스물스물 기어나오곤 해서, 나는 그 회충도 이 서커스단의 일원임이 분명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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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약장수들이 동네 어귀에 나타나면 약장수가 아니라, 동네 꼬마들이 나서서 그 사실을 알려주곤 했다아마도 당시 약장수들은 입소문 마케팅에 대해서도 통달했던 모양이다. 이 회충약 장사치가 아이들에게 환영을 받은 것은 다른 장사치들이 늘상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하고 아이들을 쫓곤 했던 데 비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관객으로 삼아준 데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웬만큼 모여들지 않거나 어른이 부족하다 싶으면 회충을 보여주는 그 크라이막스의 시간은 자동적으로 연장되곤 했다.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의한 장사였지만 철저하게 어른들의 호주머니를 겨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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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력과 서커스로 무장한 약장수들은 중세 때부터 유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약장수들 마케팅의 특징은, 사람들에게 약을 판다는 사실을 가급적 숨기는 데 있다. 설사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차력과 서커스, 그리고 회충을 뽑아내는 그 마법의 약효과에 대한 경이로움이 남아 있는 한, 공연은 유효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 마을에서 충분히 ''을 뽑았다고 생각되면, 어김없이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랑극단과 유사한 영업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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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텔레비전 볼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이제 희미한 기억 속에서 쓴웃음을 짓게 하는 이 서커스표 약장수를 또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 교육정책을 보노라면 자꾸만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도, 도무지 무시할 수는 없는, 위장술로 약을 팔려는 회충약 장수가 떠올라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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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자녀를 중학교 1학년에 입학시킨 학부모라면 1학기 시험성적표 받고 아마 기절초풍 했을 것이다. 그동안 똑똑하고 성실하고 재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자신의 아이가 이렇게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오다니... 하고 말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입이 닳도록 칭찬을 듣던 아이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전교석차 400등 중 300등에 턱걸이 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도대체 상위권에 있는 아이는 얼마나 똑똑하다는 것인지... 궁금한 게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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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육 실상은, 초등학교 4~5학년때 유학을 갔다와 영어를 마스터하고, 중학교에서 매번 영어 만점을 받고 다른 교과에서 80~90점대를 유지한다 해도, 전교석차 1/3 에도 들기 힘들다상위권은 커녕 매번 중간 턱걸이도 바쁘다. 중학교에 들어가 전문 입시학원에서 오후 4시에서 밤 10시까지 매일 책과 씨름하는 학생의 성적이 이 정도다. 생각이 있는 부모라면 동네 입시학원에 한번 가 보시라. 교과 만점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학생들이 공부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아마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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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원의 교육 풍토는 선행학습이 대세다. 그것도 1학년 정도를 선행학습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2~3학년 윗단계의 선행학습을 한다. 현재 학년에서 만점을 받으면서 이런 정도의 응용과 심화학습에서 선행학습이 가능한 학생들이 이른바 특목반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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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특목반은 초등학생 때부터 등장한다. 특목반은 우수반과 심화반을 거쳐, 만점반과 엘리트 반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영재반이 그 위에 있다. 늦어도 초등학교 4~5학년부터 특목고를 대비한 입시전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특목고가 절대적인 목표다. 그렇게 어린 학생들의 낮과 밤은 닳고 닳아 가고 있다. 생각해 보라. 현재 존재하는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만으로도 이른바 SKY는 정원이 꽉 찬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날고 긴다고 해도 확률상으로 보면 중위권 대학에 들어가기가 바쁘다. 매달 1~2백만원씩 들여, 부모와 대화할 시간은 눈꼽만큼도 없이 밤 12시까지 10년 가까이 투자한 댓가치고는 너무 허망하고 황망한 결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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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미양가로 표기되는 초등학교 성적표를 없애겠다고 했을 때 아주 반가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성적표를 없앤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주장에 자꾸만 귀가 쏠린다. 중학교 2학년부터 내신이 반영되는데, 뒤늦게 자녀의 우수하지 않은 성적을 본 학부모가 성적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하겠는가. 근본적으로 교육정책을 뜯어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사교육 시장이 뜨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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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만으로 훌륭한 인재를 만들겠다, 사교육을 없애겠다는 교육정책은 현 정부가 늘상 해온 말이었다. 하지만 말로는 사교육 잡겠다고 하면서,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자사고 설립, 국제중 신설, 전국학력평가 실시... 실질적으로는 정책이 학생들 등수 가리는 것 뿐인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 사교육 잡겠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겉으로는 사람들 환심 사기에 딱 좋은 서커스를 벌이겠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돈 내고 약을 사가라는 약장수의 위장술과, 말로 사교육 잡겠다고 하고 실질적으로는 사교육 시장을 부채질하는 MB정부의 교육정책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나는 오히려 영어 몰빵교육인지 몰입교육인지 그것을 내걸 때부터, 기실은 MB정부가 성적으로 우열을 가린 성적엘리트 학생들을 양성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그 모양새만 좋은 처음의 발상을 속으로는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게 아닌지 의아스럽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그래서 속내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교육에 계속해서 돈을 퍼붓도록 학부모들을 내몬단 말인가.

이제 알만한 학부모들은 유치원때부터 아이를 사교육 시장으로 집어넣는다. 그곳이 불행의 시작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최소한 중상위권 대학이라도 가서, 고생하지 않고 그런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현실이 그러니까.(여기서 토 달지 말자유명 대학을 가야 인생이 행복해 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는 이른바 SKY 출신 엘리트들이 죄다 휘어잡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않은가) 그렇게 이제 아이를 기르는 재미도 없이, 추억도 학원에 빼앗기고 "성적 잘 나왔니?" "그 친구는 몇 등이나 하니?" "한국사회에서는 일단 공부를 잘해야 성공도 할 수 있는거야" 이런 얘기들로 아이들을 스트레스 받게 하면서 전혀 행복하지 않은 행복계획을 세워야 한단 말인가.

한 마디로 불행이다. 어느 국가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성공한다지만,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는 어린 아이때부터 이 거꾸로 가는 교육정책 때문에 그 소중한 인생과 가족의 행복을 통째로 몰빵해야 하는지... 그런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이제 제발 좀, 70년대 약장수 연막술 걷어치우고, 아이들을 위해 좀 공부같은 공부 좀 하게, 인생같은 인생 좀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시라. 도대체 이게 뭔가. 70년대 약장수는 재미라도 주었지, 그런 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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