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끄적이는
<뇌, 생각의 출현> 대칭에서 의식까지 본문
뇌 과학 분야가 사회적 관심을 끈 적이 있을까 싶다. 요즘 이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자면 그런 새로운 트렌드를 실감케 한다.
하나의 트렌드가 형성되면 슬그머니 숟가락 얹는 위인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준비 안 된 작가들이랄까. <뇌, 생각의 출현>은 그런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인지, 인식, 생각, 마음, 정신... 뇌의 이런 작동 기제를 밝히는 데는 그동안 생물학이나 신경과학 쪽 지식이 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천문학과 물리학, 인지과학, 해부학, 인류학, 심리학 등 해박한 지식이 총동원 된다. ETRI의 책임연구원이 오랜 독서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고 천문과 우주,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전문가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그 해박한 지식에 혀가 절로 내둘려질 지경이다.
책은 태초의 우주에서부터 시작해 은하계가 어떻게 생성됐는지, 또 태양계 안에서 지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됐는지, 지구의 생명체는 어떻게 출현됐고 진화해 왔는지,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다세포 생명체로서 감각과 운동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사고하게 됐는지 등을 아주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무려 500페이지에 이르는 지식은 수십 년간 저자 박문호 박사가 축적한 지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실감케 한다.
이 책은 세포 수준에서의 인간의 의식을 명확한 과학적 이론 하에서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신경세포가 신경전달물질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신경펄스를 일으키고 이것이 출력의 과정을 따라 대뇌피질과 변연계의 파페츠 회로를 통해 인식을 형성한다는 것은 다른 책에서도 찾아볼 있다. 하지만 신경세포의 구조와 ATP같은 생체에너지 시스템까지 거슬러 올라가 마치 전자현미경을 들여다 본 것 같이 세밀하게 생각의 발생학적 과정 전반을 소개한 대중서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객관적으로 봐서 책에 담겨진 지식들은 전문가 수준을 상회한다. 생물학 전공자들도 수업에서 들을 수 없는 천문학이나 물리학 이야기들도 해박하게 담겨있어서 그야말로 학제적으로 생각이 탄생되고 작동되는 기제를 360도 반경 하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어려운 이야기들을 알기 쉽게 구어체로 설명하고 있어서, 마치 강연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왜 저자가 복잡계를 과소평가했는지 의아스럽다. 저자는 복잡계는 말 그대로 복잡한 상태라고 설명하면서 제자리에서 요동만 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복잡계가 아니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방향성이 있는 복합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가 복잡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판단의 각도가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복잡계가 생물학에서 뻗어나왔음을 감안하면, 마뚜라나가 자연표류라고 주장한 것처럼 진화의 각도에서 보면 방향성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인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외부환경적 요인보다는 생물 내부의 구조적 역동성 측면에서만 강조된 표현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나중에 그의 강연을 듣게 되면, 이 0.1%의 아쉬운 부분을 채워 저 방대한 지식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