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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똑똑한 생리적 판단, 그 무능함에 대하여

김익수 2009. 8. 26. 00:29

인간은 똑똑하게 진화해 왔지만, 재미있게도 한 번에 일곱 가지 이상의 정보는 머리에 저장하지 못한다. 전화번호가 일곱 자리인 것도 아마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인간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양의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의 정보를 무시하고 선택적으로 단순하게 정리해서 받아들인다. 선택적 인지다. 이 의도된 인지는 자신이 구축한 정신적 모형에 의해 주어진 상황에 작동되는데 교육이나 경험 등이 이를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인간이 학습을 통해 고도의 진화를 계속해서 꾀한다는 것은 그래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놀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기제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사고영역에 갇히기도 한다. 이른바 고정관념이다. 안 좋게 얘기하면 아집과 고집이다. 아집과 고집은 구조화 된 시스템에 의해 일종의 모형과 같이 작동되므로 비논리적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해답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의사소통에 성공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장시간 회의를 하는 기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나도 그 중 한 부류였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고 조율하고 걸러내는 작업은 개개인과 조직을 아집과 고집의 사고영역에서 구해내는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스피드가 중요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제아무리 유능한 관리자라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생리적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이런 능숙한 조율이 조직 내에서 끊임 없이 이루어져야 혼돈의 미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당면한 현실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유능하다고 자처하는 위인일수록 '생리적인' 추론과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지성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가끔씩 들어맞는 신뢰도와 타당도 떨어지는 판단에 "거 봐, 내 말이 맞잖아!"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면서. 헤아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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