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끄적이는
한국 저널리즘, 어떻게 바꿀 것인가? 본문
일반인들은 기사를 쏟아내는 기자들이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기대감으로 매체 수용자들은 대부분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뉴스가 사실적이라 믿으며, 전문적인 바탕 위에서 비평되고 전망되었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지만 뉴스의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기사의 전문성이 기자의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분야의 심층 포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스케치 수준으로 정리하거나 핵심을 잘못 짚는 경우, 예컨대 생명공학과 기계기술이 융합된 이른바 퓨전 분야에서 양쪽의 지식을 기사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기자의 전문성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이다. 특히 퓨전지식에 있어 한국의 기자들은 그 지식수준이 매우 뒤처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융합과 크로스오버를 반복하는 현대 사회의 복합적 현상들을 뒷받침할 배경지식이 부족한 때문이며, 이는 다시 기자들의 재교육을 1차적으로 담당할 언론기관들이 그 의무를 해태한 탓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사회적, 국가적 담론을 생산하는 기자들의 폭넓은 시야와 식견 형성의 필요성이다. 민주주의 틀 안에서 기사는 ‘민주주의’라는 범주 안에서 합목적성을 띄어야 하는 것처럼, 기자는 거시적 또는 미시적 담론을 다룸에 있어 사회적, 국가적 ‘틀’ 안에서 국가적 이익과 부합하는지 살펴야 하고, 역시 그 ‘틀’ 안에서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들을 일반 대중에 알릴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흔히 ‘기자들은 호흡이 짧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한국의 기자들은 사건이나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할 뿐,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는 자칫 미디어가 큰 사회적 이슈나 글로벌 이슈를 다룸에 있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계몽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 중앙지 기자 재교육 ‘20년 만에 한번 꼴’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전문적 지식과 자질은 매우 폭넓고 높다. 일반적으로 볼 때 기자는 정치, 경제, 금융, 사회, 문화 등 출입분야에서 요구되는 전문적 지식 외에도 기사를 작성하기까지 요구되는 일련의 전문지식(취재능력, 기사작성능력, 대인관계능력, 사실에 대한 객관적 판단능력과 윤리성 등)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특히 국제금융이나 주식, 보험, 외교, 생명공학, 반도체 등 특화된 전문분야에 있어서는 일반인에 대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전문지식이 요구되며, 전광석화 같이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그에 필요한 지식의 습득 또한 꾸준히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자들의 재교육은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미미하며, 재교육 양상도 1차 교육 책임자인 해당 언론기관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언론재단 등 유관단체에 의한 지원 성격인 경우가 많았다.(황치성, 언론재단, 1999)
심지어 언론재단이 전국 신문ㆍ방송ㆍ통신기자를 대상으로 지난 1999년 실시한 설문조사 중 ‘언론인 재교육과 전문화’ 부분을 집중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앙지 기자들의 재교육 기회가 ‘20년 만에 1번 꼴’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물론 해당 설문조사 시기는 인터넷이 완전히 확산되기 이전이고 이후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점에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컨대 중앙일보가 지난 2006년 12월부터 ‘일등ㆍ일류 중앙일보를 만드는 기자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실시중인 ‘기자재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교육프로그램이 ▲해외연수 ▲대학원 지원 ▲자기계발 휴직 ▲재충전 안식월제 ▲학습 소모임 등으로 자기계발 독려나 복지 혜택의 연장선상의 프로그램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력 프로그램도 ▲초빙 교수제 ▲임금 피크제 ▲전략적 파견 등이 있으나 대학과 연계한 교수 파견과 같이 현업에서의 전문성 강화보다는 자기계발 차원의 지원이거나 임금에 연동한 복지적 성격이 강하다. 첨단화ㆍ다양화ㆍ복잡화 된 현대사회에 적응해 실질적으로 지식을 고도화, 전문화, 퓨전화하고, 미시적~거시적 지식을 학습하고 탐구하여 실무에 적용하려는 학습조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습모임 지원을 제외하고는 해외연수, 대학원 지원, 전략적 파견 등 대부분의 지원이 최소 7~8년차 이상의 경력자들을 겨냥하고 있어 ‘간부 발탁용’ 또는 ‘배려용’이라는 인상을 준다.(실제로 중앙일보는 직무로드맵을 차장, 부장, 전문기자 발탁과 연계하고 있다.)
■ 트렌드 쫓아가는 심화학습 마련돼야
세상은 변화하고 그 변화하는 속도는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언급한 것보다도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 기자는 속성상 출입처에 의존에 기사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나 정부가 3마일, 25마일로 달린다고 해서 언론이 보폭을 같이 한다면 도태하고 말 것이다.
미국은 이미 ‘시대의 속도’에 맞춰 편집국 시스템을 바꿔나가고 있다. 가넷그룹은 편집국을 ‘정보센터’로 바꾸고 취재에서 편집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질적으로 변경했다. 이 정보센터는 ▲뉴스콘텐츠를 배급하는 모든 플랫폼을 감시하는 기능 ▲지역사회 네트워크 기능(지역성)을 강화하는 기능 ▲수용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하는 기능 ▲뉴스조직을 지역사회의 토론중심지로 만드는 기능 ▲콘텐츠를 맞춤화 하는 기능 ▲수용자의 개별적 요구에 대응하는 기능 ▲멀티미디어뉴스 생산기능 ▲뉴스 게재속도를 가속화 하는 디지털신경센터 기능 등의 역할을 한다.(김사승, 숭실대, 2007)
편집국 시스템이 이런 방식으로 바뀌게 되면 수용자 지향적인 디지털 트랜드를 쫓게 되고, 이는 곧 매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은 예컨대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활용 능력 등을 요구받게 될 테지만 이 또한 기자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경쟁력이 향상되는 것이지, 기자들을 간섭하는 게 아니다. BBC도 이미 보도국을 정보집적, 정보조직, 정보중개자의 기능으로 전환한다고 샘브룩 보도국장이 밝힌 바 있다.(김사승, 숭실대, 2007) 글로벌 미디어들이 ‘속도의 경쟁’에 발맞춰 이런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의 재교육 시스템이 부재하다시피 한 한국 언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미 시대는 초고도화 되어 가고 있고, 엔터테인먼트경영학부(게임+경영학 접목), 정보공학통번역과정(정보통신+정보공학+번역+통역을 마스터해야 졸업), 에듀테인먼트(교육+게임 혼합 상품) 등 超 퓨전화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사작성과 취재, 편집 등 1차원적 저널리즘 기술로 수용자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이제 기자는 인터넷뿐 아니라 모바일과 Flexible Paper 등 곧 다가올 제3의 테크놀로지 환경의 글쓰기에서부터 그러한 환경적 변화가 미디어와 수용자에 미치는 영향, 또 다변화된 커뮤니케이션 Tool 속에서의 미시적~거시적 담론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는지 등을 심층적으로 학습하여야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이를 위해서는 기자들의 1차적 재교육 장소인 개별 언론사들이 자율적 학습동아리 개념의 ‘소모임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언론재단과 같은 유관기관 또는 대학 등과 연계된 공동 프로젝트 진행을 통해 재교육 양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솔개가 나이 40에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부리와 깃털을 쪼아 새 부리와 깃털을 뽑듯이, 판을 갈아엎겠다는 혁신의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