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끄적이는
‘Red flag word’ 표식을 달자! 본문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앨버트 매러비안 교수는 인간이 대화시 외모나 제스처 등 시각적 요소 55%, 음성이나 어투 등 청각적 요소 38%, 말의 내용인 언어적 요소 7% 등으로 상대를 지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른바 언어적 요소보다는 비언어적 요소가 대화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다.
그런데 의사소통 관점에서 이는 좀 다르게 분류되기도 한다. 예컨대 언어를 인성(人性)언어, 음성언어, 시각언어로 구분하는 것이다. 인성이 포함된 것은 지적수준과 가치관, 신념, 태도 등 이른바 내적이미지(Personality)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인성언어는 쉽게 말해 화자의 품성과 인격을 반영한다.
지난 3월말 언론재단이 제주도 서귀포에서 외신기자 초청 <한국경제와 외신보도>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고학용 언론재단 이사장이 개회사에서 “외신들의 한국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포문을 열어 기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악의란 문자 그대로 악한 마음, 즉 악심(惡心)을 가졌다는 것인데, 명백한 증거 없이 공개석상에서 그런 말을 했으니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좋지 않은 보도’라는 표현을 써도 됐을 것을 감정적으로 대응해 말의 격도 떨어뜨리고 실속도 못 챙긴 결과가 돼버렸다.
그나마 인성언어 측면에서 이 정도 표현은 격(格)이 높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10월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졸개’라고 표현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나 이에 격분해 기자들에게 욕설을 했던 유인촌 장관의 막말 사례는 그야말로 인성이 실종된 대표적 케이스다. 명예훼손에 해당되거나 질 낮은 언어로 상대방의 감정에 상처를 입힐 때 ‘위험한 언어’라는 경고의 표시로 ‘Red flag word’라는 표식을 달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가 해당된다.
둘러보면 우리 사회에 이런 표식을 달아줘야 할 사람들이 참 많다. 연신 거친 단어로 국민들의 심성을 거칠게 만드는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아예 국회 앞마당에 Red flag word 깃발을 꽂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다.
또 한 부류는 교육자들이다. 특히 나이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육자들은 절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첫째아들의 유학 후 복학 문제로 초등학교 교무실을 찾았다가 학부모가 있는 앞에서 “야 임마, 이리 와봐” 하며 아이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가 이 정도니 중고등학교는 어떠할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돼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에게 기도 안 찰 얘기를 듣고 말았는데 친구가 복도에서 뛰다가 걸렸는데 선생님이 “씨XX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질이 의심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정말이지 Red flag word 스티커를 공식적으로 발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을 투영한다. 동시에 화자의 지식과 덕성, 품성, 태도를 반영한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한 템포 늦추어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입을 열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사회 지도층, 지식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잘 지켜져야 한다. 사회지도층과 교육자들의 말은 사람들의 인식에 둥지를 틀고, 여론을 형성하고, 결국 담론을 만들어낸다. 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혹자는 정치판과 같이 정치적 또는 심리적 요소가 고려되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Red flag word가 붙는 말은 격이 떨어진다. 인터넷 악성댓글 등으로 인성이 실종된 언어가 판치는 세상이다. 하나하나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 김익수 / 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칼럼니스트
* <아시아투데이> 기고분